碩友

광인과 금수

오늘은 난희 2020. 8. 18. 20:02

그럼 이렇게 합시다. 100일. 100일 동안 우리가 대체 무슨 감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도대체 무슨 말인지. 처음에는 전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친구라는 단어를 기어코 파기하자, 제어구가 박살 난 것처럼 광인 한 명과 금수 한 마리의 경계가 무너졌다. 이 자는 미쳤다. 그렇다고 다른 쪽이 미치지 않았냐 하면은. 그 중앙에 광인은 100일이란 시간을 던져 넣었다. 금수는 이해하지 못했다. 광인에게 필요한 것이 정녕 시간일까.

 

100일 동안 왜, 같이 놀아 봅시다. 미친 놈이 둘인데 미친놈이 미친놈이랑 만나야지 누구랑 만나겠습니까.

 

광인의 제안은 광인과 금수의 고삐를 잡아챘다. 금수의 날 선 감각 내지 무의식이 요동쳤다. 이것을 수락하면 지금의 고통이 백 일간 박제될지도 모른다. 이것은 광인이 금수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내건 시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금수에게 남은 것은 광인에 대한 맹목이었다. 그것을 금수는 감히 사랑이라 칭했으나, 그 근간과 향방은 아무도 몰랐다. 정신없이 얽혀 든 광인과 금수의 관계에 대한 집착일지도, 광인을 앞에 세운 종교일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교리는 무엇인가.

 

정말 내가 주는 온기가 좋아서라면, 당신이 그만 비참해질 수 있다면 그리하겠노라 약조하겠습니다. 100일 동안 내 김호진씨를 사랑하고도 버틴다면 그때에는 당신 맑게 내 것이 되리라 믿는 구석을 한 가닥 쥐게 해주십시오.

 

금수는 끝끝내 광인이 말하는 바를 수락하고, 새로운 약조를 내걸었다. 금수는 아주 뜨거운 존재였고, 그가 가진 온기를 가지러 올 수 있는 자는 광인밖에 없었다. 흐린 이성 사이로 금수는 원하는 바를 뱉어 둘 사이에 새겼다.

 

합시다. 100일 동안 연인 하자 하던 거. 연인으로 합시다. 내 정석우 씨를 보고 있으면 일말의 살 수 있다는 알량한 희망이 보여서 두렵다가도 놓기가 싫습니다. 그 순간에 기대해보고 싶은 게, 내가 원하는 바입니다.

 

광인은 말했다.

 

금수는 믿었다.

 

현재 진행형으로 남은 시간을 단위로 재어 세는 것이 의식 같이 둘 사이에 내려 앉았다.

 

그것은, 무척이나, 신성한, 일이었다.